3-112 to 3-131: Jesus’ Bride and Jesus’ Enemy

Jesus’ Bride and Jesus’ Enemy

Sun Myung Moon
October 13, 1957
Let Us Restore God’s Kingdom And His Righteousness
Selected Speeches of Rev. Sun Myung Moon, Volume 3
Seoul, Korea
Unofficial Translation

Was there anyone who understood Jesus’ Shim Jung1 at that time? Was there anyone who, as God’s true son or daughter, felt sorry upon seeing Jesus being chased away and rejected by his own race? There was not even one person. If there had been even one person like that, he would have carried out an amazing mission of testifying to Jesus representing all of the 4,000-year history. If there had been a man who could represent the sorrowful Shim Jung of the love of Jesus, he could have fulfilled God’s will by attending Jesus from the position of a bride.

However, because there was not even one person who could manifest the garden of love and the righteousness of the Kingdom of Heaven on earth, God still stands in the sorrowful and grieving position where He needs to beg you today to build that kingdom and righteousness that He has been longing to see. For that reason, you are destined to walk this path in order to fulfill this will.

Even if great numbers of Christians of the world would come to unite together today, you should understand that God’s Will still cannot be realized. The question is whether there is one person who can be one hundred percent in accord with God’s essential love and whether this person can become a bride who can completely resonate with the loving Shim Jung of Jesus, — this desperate desire to give. Jesus is looking for one person who represents the life of sacrifice and service that he practiced. You should also keep in mind that not only is Jesus seeking such a person, but also God is looking for this one person.

Until God’s providence for the universe is consummated, a certain standard should be established on this earth in order for you to become such an individual. Unless you can set up this standard, you will have nothing to do with the true purpose of the words Jesus spoke, with such a heartrendingly sorrowful heart, “Do not worry about your life… But seek first the kingdom of God and His righteousness.”

What is our sorrow today? What is your grief? What is the anguish of Christianity? What is the sorrowfulness of the world? What is the grief of this earth and what is the sorrow of Heaven? Where is the love that Jesus wants to give blocked? You should understand that the fact that we still have not been able to solve all these problems is the cause of God’s lamentation.

When looking at human beings living on this earth today, there is no one who can answer to these questions. For this reason, God is grieving and lamenting even at this hour. Furthermore, you are faced with a historical fate which you should overcome. That is the fate to go through the process of judgment.

While going such a road, God feels sorrow, not because you do not have Heaven’s love or righteousness. God’s sorrow is because there is no one with a Shim Jung to conform to the law of nature to relate to Him as His object, and because there is no one with the value of eternal existence, transcending humanistic ideology and concepts.

Humankind should naturally be able to feel God’s love and naturally live a life with a heart of service that is the essence of that kingdom and that righteousness. However, they are not able to live like that. Therefore, you must practice God’s love even if you are going through a period of confusion, contradiction and struggle in the course of your faith. You must struggle to lead a life of service.

Who then is your enemy? Who is the enemy of your race? Who is the enemy of this world and Heaven and earth? The enemy is this entire universe where billions of invisible Satans reside.

However, you don’t need to worry about such enemies. The problem is you, the individual. The pressing question is how you can eliminate the enemy hidden inside yourself. Who was the enemy of Jesus when he came to this earth in order to save all humankind? His enemy was the group of people who recognized him not as someone with absolute value but as someone with relative value. For this reason, Jesus painfully longed for one person, who would emerge from among many, and to whom he could say, “Your heart and my heart are one and the same.” If such a person had appeared, even if Jesus had died on the cross, his love and ideology would have been firmly established on earth. However, it did not happen that way. That was the cause of Jesus’ bitter sorrow. You should understand this.

What is the world like where that kingdom and righteousness have been attained? This is a world of love, where each person enjoys giving to and receiving from one another. It is a world in which the life of serving and sacrificing for the sake of God will be glorified. You should understand this. Thus, that world is not like this world in which we live today.


1 Shim Jung is a Korean word that is roughly translated as Heart in English. Heart (Shim Jung) is the essence of God’s personality — the essence of his original nature. Heart is the most vital part of his nature, such that all other attributes in him are what they are and do what they do solely because of the attribute. Heart is the impulse to love and to be united in love with the object of its love. For this reason, Heart is said to be the source of love, and at the same time is the chief motive behind love.

그 나라와 그 의를 찾아 세우자
1957.10.13 (일), 한국 전본부교회

그 나라와 그 의를 찾아 세우자
마태복음 6:16-34

[기 도]

땅을 대한 아버지의 서러움이 오늘 이 시간도 이땅의 만민 위에 남아 있다는 사실을 저희의 몸 마음이 체휼하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에덴에서 타락한 아담 해와를 쫓아내셨던 아버지의 그 서러움의 흔적이 아직까지 저희의 몸 마음에 남아 있다는 것을 이 시간 여기에 모인 아들딸들이 깨닫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저희들의 마음이 바라는 소망은 영원하신 아버지의 이상의 동산이었사옵고, 저희의 몸이 바라는 것은 사탄과 싸워 승리한 영광의 모습을 아버지 앞에 자랑할 수 있는 그 한날을 찾는 것이었사오니, 저희의 마음이 아버지의 영광을 입고, 저희의 몸이 아버지의 형상을 닮아 저희의 몸 마음이 아버지의 즐거움의 대상이 되고 영광의 모습으로 나타나게 허락하여 주시옵길, 사랑하는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그러한 승리의 아들딸의 형상을 갖추어야 할 저희들이라 하올진대, 오늘 여기에 모여 당신 앞에 엎드린 아들딸들, 그 마음을 아버지의 영광 앞에, 그 몸을 아버지의 성상 앞에 자신의 모든 것을 내놓고 황공한 모습으로 지난날의 부족했던 자아를 이 시간 회개하고 반성할 수 있게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아버님, 저희에게 진정으로 아버지의 사랑을 흠모하고 아버지의 인격을 닮고자 하는 마음이 있다면, 오늘의 아버지의 그 서러움이 저희의 서러움이요, 아버지의 안타까움이 저희의 안타까움이 되어야 할 줄 알고 있사오니, 사랑하는 아버님, 그러한 저희가 되게 역사하여 주시옵소서.

사랑의 아버님이시여! 저희 중에 몸 마음이 사망과 어둠의 길로 나가고 있는 것을 알면서도 아직까지 회개하지 못하고 있는 아들딸이 있사옵니까? 아버님이여, 능력으로 나타나시옵소서. 아버님이여, 힘으로 나타나시옵소서. 아버님이여, 재창조의 부활의 역사를 일으켜 주시옵소서. 그리하여 저희의 몸 마음에 아버지의 무한하신 사랑의 품을 향하여 달음질쳐 들어갈 수 있는 능력을 지니게 허락하여 주시옵길, 사랑하는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지나간 일주일 동안 아버지의 품을 떠나 산 자가 있사옵니까? 자기 스스로 아버지 앞에 뉘우치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혹시 저희들 중에 옳지못한 마음을 품고 아버지의 뜻을 거역한 자가 있사옵니까? 이 시간 아버지 앞에 회개하고, 아버지의 긍휼하신 은사와 사랑 속에서 안식할 수 있게 인도하여 주시옵길, 사랑하는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아버님, 시간이 가면 갈수록 최후의 싸움의 날이 저희의 목전에 당도하고 있음을 알게 허락하여 주시옵고, 그 싸움터에서 낙망하는 자들이 되지 말게 허락하여 주옵소서. 아버지를 대신하여 최후의 승리의 한 기준을 세울 때까지는, 싸우고 또 싸워 나갈 수 있는 하늘의 정병들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사랑하는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이 시간도 억만 사탄들은 저희를 노리고 있사오니, 아버지의 그 사랑의 은사를 저버리고 배반하는 자들이 없게 허락하여 주시옵고, 한 생명이라도 사탄의 품에 끌려가는 자들이 없게 허락하여 주시옵길, 사랑하는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사랑의 아버님, 지나간 일주일 동안 저희가 아버지와는 너무나 먼 거리에서 생활하였사오니 이 한 시간이라도 아버지의 사랑의 품에 안기어, 아버지의 허락없이는 임의로 움직이지 않는 아들딸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고, 이 시간도 지방에 널려 있는 외로운 아들딸들이 사탄과의 싸움에 지쳐 아버지 앞에 엎드려 호소하고 있을 줄 알고 있사오니, 어느곳에 있든지 같은 은사로써 함께하여 주시옵고, 같은 영광의 자리에 세워 주시옵소서.

이날까지 저희와 같이 슬퍼하시었고, 저희와 같이 싸우시었고, 저희와 같이 어려움을 당해 오신 아버지시여! 이제 아버지의 소망의 한날을 바라보고 싸워야 할 새로운 싸움이 저희에게 남아 있는 줄 알고 있사오니, 아버님이여, 저희에게 무한한 능력을 부어 주시어서 그 싸움에 이길 수있게 역사하여 주시옵고, 부디 부족한 모습이 되지 말게 도와주시옵소서.

사랑의 아버님, 자신의 문제로 말미암아 아버지의 뜻을 향하여 나가지 못하고 머무는 자들이 있사옵니까? 그러한 자들이 없게 허락하여 주시옵고, 이 한날 저희의 모든 행실이 아버지의 영광을 나타낼 수 있게 도와 주시옵고, 아버지의 심정을 체휼하고 아버지의 형상을 닮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사랑하는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이 시간 삼천만 민족을 대신하여 모이는 수많은 제단이 있을 줄 알고 있사오니, 사랑의 아버님, 모이는 곳곳마다 예고하신 약속의 뜻을 이루어 나라게 허락하여 주시옵고, 성령을 물붓듯이 부어 주시어서 억만 사탄들을 물리치고 아버지의 영광을 드러낼 수 있는 귀한 제단들이 되게 역사하여 주시옵소서.

그리하여 이 민족이 아버지의 사랑의 품에 안기고, 나아가 민족을 통하여 이 땅의 수많은 인류가 아버지의 영광의 한날을 맞이할 수 있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또한 인류를 통하여 하늘의 천천만 성도들까지 화동하는, 둘이 아닌 하나의 세계를 이루어, 아버지의 영광을 찬양하고 아버지의 사랑을 체휼하며 사는 새로운 복귀의 동산이 어서 속히 이 땅 위에 이루어질 수 있게 역사하여 주시옵길,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여기에 부복한 저희들은 뜻을 이루기 위하여 모든 것을 바치고 나선 아들딸들이오니, 아버님이시여, 뜻을 향한 그 발걸음을 멈추지 말게 허락하여 주시옵고, 어떠한 고난과 역경이 닥쳐올지라도 그것을 헤치고 갈 수있게 함께하여 주시옵소서.

이 시간도 시련과 역경에 부딪쳐 외로이 아버지께 호소하는 아들딸이 많이 있을 줄 알고 있사오니, 사랑의 아버님, 그들이 어느곳에 있든지 일률적인 은사로 역사하여 주시옵고, 일률적인 사랑으로 품어 주시옵소서.

부디 승리의 한날, 아버지의 나라를 이루어 드리는 그 한날까지 싸움에 지쳐 쓰러지지 않도록 아버지께서 붙들어 주시옵길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오며, 남은 시간을 아버지께 맡기오니 전체를 주관하여 주시옵소서. 모든 말씀 주의 이름으로 기도하였사옵나이다. 아멘.

말 씀
오늘은 여러분들과 `그 나라와 그 의를 찾아 세우자’라는 제목을 가지고 같이 생각하고자 합니다.

인간의 소망 실현을 위해 오신 예수님과 그의 말씀
오늘날 이 땅 위에 살고 있는 수많은 인간들은 하나님이 예고하였던 그 나라와 그 의를 찾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 나라와 그 의를 찾는 것이 오늘날 우리 인류의 소망이요, 또한 지금까지 수천년 역사과정의 인간에게 있어서도 하나의 소망이었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될 것입니다.

그러면, 이러한 소망의 그 나라, 소망의 그 의가 어찌하여 우리의 최후의 목표로서 남아지게 되었는가. 그것은 인간이 타락했기 때문입니다. 인간의 타락으로 말미암아 그 나라와 그 의의 중심이 될 수 있는 하나님과 인간이 아무런 관계를 맺을 수 없는 처지에 놓이게 되었습니다. 즉 그 나라와 그 의의 중심인 아버지에 대하여 자세히 모르는 인간이 되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그와 같이 무지한 백성과 인류를 깨우쳐, 그 아버지가 어떠한 분이시라는 것을 알려주기 위하여 지금까지의 역사노정에서 수고해 오셨던 것입니다. 그래서 그 나라와 그 의를 찾아 세우는 것이 아직까지 우리의 소망이요, 목표로 남아지게 되었던 것입니다.

이처럼 그 나라와 그 의를 이 땅 위에 찾아 세우시려는 아버지가 계시다면, 그 아버지의 뜻이 이 땅 위에 반드시 남아 있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러면, 이와 같이 인간이 소망하는 하나님의 나라, 하나님의 의를 찾아 세우기 위해서 여러분은 어떻게 해야 될 것인가? 지금까지의 역사노정에서 인간과 관계를 맺어 그 나라와 그 의를 찾아 세우기 위해 수고해 오신 아버지를 찾아야 합니다. 먼저 그 아버지를 찾지 못한다면 그 나라와 그 의를 찾아 세우지 못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세상에 살고 있는 사람은 어느누구나 어떠한 역사과정을 거쳐서라도 먼저 그 나라의 주인공인 아버지를 찾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만일 인간들이 그 아버지를 찾지 못한다면, 그 아버지의 영광이 이 땅 위에 나타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인간이 소망하는 하나님의 나라와 하나님의 의를 이 땅 위에 찾아 세울 수 없는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 이전까지 이 땅 위에서 하늘과 땅을 향하여 `내가 그 나라의 주인공이다’라고 하는 사람은 나타나지 않았던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예수님이 오시기 전에는 그 나라의 의를 대신할 수 있고, 그 의를 따라가고 있으며, 그 의의 실체라고 자신있게 외치고 나선 사람이 없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이와 같이 소망이 없는 적막한 천지에 하늘의 소망과 의의 혈통을 이어받아 태어나셔서 `내가 그 나라의 아버지 대신이요, 내가 그 나라의 의의 실체’라고 주장하고 나선 한분이 있었다는 사실은, 이 땅위의 인류에게는 복음 중의 복음이요, 희소식 중의 희소식이었던 것입니다.

그러면, 그러한 주장을 하고 나선 분이 누구였습니까? 바로 그분이 종교로부터 불신을 당하고, 교단으로부터 매장을 당하고 버림을 받고, 국가로부터 추방을 당했던 분, 오늘날 여러분이 믿고 있는 예수 그리스도였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여러분은 확실히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러면, 그 예수께서 이 땅 위에 나타나시어 뭐라고 말씀하셨습니까? 4000년 역사를 뒤집어 놓고, `나는 하나님과 한몸이다’라고 했으며, `나는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주장했습니다. 또한 `나를 믿어야 아버지를 알고, 나를 믿어야 그 나라를 이룬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고도 했습니다. 이와 같이 하늘의 전체적인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자신을 믿어야 하고 자신을 통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예수님께서는 강력히 말씀하셨던 것입니다.

그리고, 천상과 지상에 가로막혀 있는 모든 것을 헤치고 나타나셔서, 그 나라와 그 의의 중심인 하나님과 인연을 맺을래야 맺을 수 없는 타락한 인간들에게 나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각자의 생활에서 `하나님과 관계맺어 나갈 수 있다’고 예수께서 말씀하신 것은 타락한 인간들에게는 복음 중의 복음이 되었던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이제 여러분은 예수님의 그러한 복음을 믿고 있는 오늘날 기독신자에게 예수님만을 그저 바라보고만 있어서는 안 될 때가 다가왔다는 것을 알려야 되겠습니다.

`그 나라와 그 의’의 본질과 예수의 소원
그 나라와 그 의를 찾아 세우려는 하나님의 소망은 인간과 피조만물을 떠나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인간을 통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그 소망은 참다운 인간을 통하여 하나님과 만물이 동화되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타락한 인간 앞에 하나님을 대신한 하나의 실체로서, 하늘의 혈통을 대표할 수 있는 분으로서 예수님을 이 땅 위에 보내셨던 것입니다. 즉 예수님은 이 땅 위에 제일 처음으로 하나님의 역사적인 소망을 성취해 드리기 위해 오신 분이었던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러한 예수님을 당시에는 말할 것도 없고 오늘날 이 땅 위에 살고 있는 인류나 생명을 지닌 어떠한 존재까지도 반대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지상에 살고 있는 인류는 그 나라의 영광과 그 의를 증거할 수 있는 생활적인 환경을 갖추어야 할 존재들이기 때문에 그 한 뜻이 이루어지는 한날을 소망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사실을 돌이켜볼 때, 예수님이 돌아가시게 된 사실은 인간에게 있어서 무한한 서러움이요, 가장 비통한 일이 아닐 수 없는 것입니다. 그로 말미암아 여러가지 복잡한 환경에 부딪쳐야 하는 역사적인 고통의 과정을 거치지 않으면 안 되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찾고자 하는 나라는 어떠한 나라입니까? 그 나라와 그 의의 본질이 무엇인가를 여러분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땅 위에 오셔서 인간이 소망하는 그 나라의 의를 나타내기 위하여 수고하셨으며, 만민을 사랑하고, 만민을 구원하시기 위해 희생의 길을 가셨던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께서 이루시려 하셨던 그 나라는 `주는 사랑’이 넘치는 나라요, 봉사하는 희생의 생활이 넘치는 나라였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여러분이 영계를 체험해 보면 완연하게 느낄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러한 나라를 주관하시는 하나님은 어떤한 분이냐? 만물을 대하여 인간을 대하여 애달픈 마음을 지니고 사랑을 주기 위하여 애쓰시는 분인 것입니다. 그러한 하나님이 바라시는 생활이 어떤 것인가. 하나님은 땅 위의 만민이 자신의 모든 것을 저버리고 희생하고 봉사하면서 그 나라의 건설을 위해 수고를 아끼지 않는 생활을 하기를 바라고 계시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여러분은 인간이 소망하는 그 나라는 본질적인 사랑이 실현된 나라, 즉 주기 위하여 애달파하는 마음을 가진 사람들이 사는 나라라는 것과, 또 사랑의 본질은 사랑을 주기 위하여 애달파하는 것이라는 사실을 알고, 그 의와 통할 수 있는 그러한 희생과 봉사의 생활노정을 걸어나가야 되겠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서러움은 무엇입니까? 당신의 사랑을 온전히 줄래야 줄 수 있는 사랑의 대상자를 찾지 못한 것이 하나님의 서러움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인간을 대하여 무한히 희생하고 봉사하듯이, 이웃을 위하여 무한히 봉사하고 희생할 수 있는 그런 사람을 찾지 못한 것이 하나님의 서러움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예수님께서 이땅에 오셔서 끝날을 예고하실 때, 무엇을 말씀하셨던가. 하나님의 심정을 상속받아 하나님의 실체로 나타난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의 사랑을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이땅의 온 인류를 대해 너희는 나의 친구라고 하시면서 하나님의 사랑을 만민 앞에 증거하고 몸소 행하셨던 것입니다.

그와 같이 하늘의 사랑을 나타내기 위하여 수고하셨던 예수님의 마음에 사무친 것은 무엇이었던가? 그것은 어떻게 하면 만민에게 하늘의 사랑을 줄 수 있을까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그 사랑을 주신 목적은 어디에 있었던가. 그 목적은 당신을 믿고 따르는 자만을 사랑하려는 것이 아니라, 이스라엘민족·유대교단, 나아가 이방민족까지 사랑하여 이 땅을 하나님의 사랑이 가득찬 이상동산으로 건설하시려는 데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그 당시 예수님을 믿고 따르던 제자나 군중, 또는 반대한 유대교인·이스라엘민족 중 어느누구도 예수님의 그 사랑의 심정과 영원한 관계를 맺지 못했습니다.

사랑을 주고자 하시는 하나님의 심정을 닮은 하나의 존재를 찾아 교단을 통하고, 민족을 통하고, 이스라엘 국가를 통하고, 나아가 세계를 통하여 이 땅 위에 하나님의 나라를 건설하고자 하셨는데, 예수님의 그 뜻을 가정이 막아버렸고, 교단이 막아버렸고, 따르던 제자가 막아버렸고, 이스라엘민족이 막아버렸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의 뜻을 다시 이 땅 위에 이루시기 위하여 예수님께서 다시 오셔야 하고, 그러한 주님이 다시 오시는 그날이 바로 오늘날 기독교인들이 소망하고 있는 재림의 날이라는 것을 여러분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리고, 여러분은 예수님께서 인간을 사랑하는 마음에 사무쳐 있었던 동시에 생활적인 면에 있어서도 남을 위한 봉사의 생활을 하였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만민을 위하는 일이라면 자신이 사탄 앞에 찢기고 제물되는 한이 있더라도 일신의 모든 것을 잊어버리고 희생과 봉사의 길로 나섰던 예수님이셨던 것입니다.

예수의 신부와 예수의 원수
그런데 그 당시 이러한 예수님의 심정을 알고, 하나님의 참다운 아들딸로서 민족 앞에 몰림받고 배척받은 예수님을 보고 서러워한 사람이 있었습니까? 한 사람도 없었다는 것입니다. 만일 그러한 사람이 한 사람이라도 있었다면 그는 4000년 역사를 대신하여 놀라운 증거의 사명을 하였을 것입니다. 주기를 원하는 예수님의 애달픈 사랑을 심정을 대신하는 사람이 있었다면 신부의 입장에서 예수님을 모시고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나갈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와 같이 주고 싶어하는 사랑의 동산, 천국의 의를 땅 위의 생활에서 나타낼 수 있는 한 사람이 없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오늘날 여러분에게 소망의 그 나라를 요구하게 되고, 소망의 그 의를 요구하게 되는 서러운 입장에 계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날 여러분들이 어차피 그 뜻을 이루어 나가야 되겠습니다.

여러분은 세계에 널려 있는 수많은 크리스챤들이 단결하였다고 하여 그 뜻이 이루어지는 것이 아님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하나님의 본질적인 사랑에 백퍼센트 부합될 수 있고, 주기 위해 애달파하시던 예수님의 사랑의 심정을 통할 수 있는 하나의 신부가 될 수 있느냐 없느냐가 문제라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이 실천했던 희생과 봉사의 생활을 대신하는 한 존재를 찾고 계신 것입니다. 또한 그러한 존재는 예수님뿐만 아니라 하나님께서도 찾고 계시다는 것을 여러분은 명심해야 되겠습니다.

이 우주에 대한 하나님의 섭리가 끝나지 않은 이상 이 땅 위에 그러한 존재가 되기 위한 어떤 하나의 기준을 반드시 세워 놓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만일 여러분이 그러한 하나의 기준을 세워 놓지 못한다면, 예수님께서 애달픈 심정으로 `너희는 모든 것을 버리고 오직 그 나라와 그 의를 구하라’고 하시던 그 말씀의 목적과 여러분과는 하등의 관계가 없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오늘날 우리들의 서러움은 무엇인가. 나의 서러움도 무엇인가. 기독교의 서러움은 무엇인가. 또 세계의 서러움은 무엇이고, 이땅의 서러움은 무엇이며, 하늘의 서러움은 무엇인가. 주고자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은 어디에 머물 것인가. 우리가 이러한 모든 문제를 아직까지 해결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 하늘의 탄식임을 여러분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오늘날 이 땅 위에 살고 있는 인간을 살펴볼 때, 그러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존재가 되었느냐 하면 못 되어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이 시간도 애달파하시며 탄식하고 계신 것입니다. 또한 여러분 앞에는 그것을 타개하고 넘어가야 할 역사적인 운명, 즉 심판의 과정을 거쳐 나가야 할 운명이 가로놓여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이 그러한 길을 거쳐나가는 과정에서 여러분에게 하늘의 사랑이 없어서 서러움을 느끼는 것이 아니요, 하늘의 의가 없어서 서러움을 느끼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인간의 어떠한 이념과 관념을 초월하여 영원한 실족의 가치를 지닌 인간으로서 자연의 법도에 순응하고 하나님의 상대가 될 수 있는 심정을 지닌 존재가 없기 때문에 서러워하신다는 것입니다.

자연스럽게 하나님의 사랑을 느끼고, 자연스럽게 그 나라와 그 의의 본질인 봉사의 심정을 갖고 생활을 할 수 있어야 되는데, 사람들이 그러한 생활을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은 신앙노정에서 혼돈과 모순과 투쟁의 과정을 거치면서 하나님의 사랑을 하고, 봉사의 생활을 하기 위해 몸부림쳐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여러분의 원수는 무엇입니까? 민족의 원수는 누구입니까? 이 세계와 하늘 땅의 원수는 무엇입니까? 그것은 다른 것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억만 사탄들이 우거하고 있는 이 우주 전체가 원수라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여러분에게는 그러한 원수가 문제시되지 않습니다. 문제는 여러분 개인입니다. 여러분 개인에게 감추어져 있는 원수부터 제거해 나가는 것이 시급한 문제라는 것입니다. 만민을 구원하기 위해 이땅에 오셨던 예수님의 원수가 누구였습니까? 그분을 절대적인 가치의 존재로가 아니라 상대적인 가치의 존재로 아는 사람들이 바로 예수님의 원수였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그들 중에서 당신의 본성과 관계맺어 `너희의 마음이자 내 마음이다’라고 할 수 있는 하나의 존재가 나오기를 고대하셨습니다. 그러한 한 존재가 나왔더라면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돌아가셨을지라도 그분의 사랑과 이념은 이 땅 위에 세워질 것이었는데 그렇지 못한 것이 예수님의 안타까움이었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또 그 나라와 그 의가 이루어진 세계는 어떠한 세계냐 하면, 서로서로 주기를 즐겨하는 사랑의 세계요, 하나님의 뜻을 위하여 봉사하고 희생하는 생활이 빛이 나는 세계라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 세계는 오늘날 우리들이 살고 있는 것과 같은 이런 세계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받을 수 있는 길
그러면, 여러분이 어떻게 해야 하나님의 참된 사랑을 받을 수 있을 것인가. 앞에서도 말씀드린 바와 마찬가지로 여러분이 스스로 남을 위한 희생의 길, 봉사의 길로 나가게 될 때 비로소 하나님의 사랑을 받을 수 있게 된다는 것을 여러분은 명심하시기 바랍니다.

이 땅의 인간을 그와 같은 길로 이끌어야 할 입장에 있는 예수님에게는 그 당시 땅 위에 살고 있던 인간들 중 어느누구도 남을 사랑하고 남을 위해 살려고 하는 사람은 없었고, 오히려 자기를 위해 살아 주기를 바라고, 사랑을 받기만을 원하는 사람뿐이었기 때문에 대하는 사람 모두가 애처로움의 대상으로만 보였던 것입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의 뜻을 이 땅위에 이루기 위하여 희생과 봉사로써 하나님의 사랑을 줄 수 있는 하나의 존재를 찾지 못한 것이 예수님에게 있어 가장 큰 안타까움이요 슬픔이었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보여주려 해도 보지 못하고 손에 쥐어주어도 알지 못하는 무지한 사람들을 대하시면서 안타까와 하셨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그들에게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그것은 자신의 생활을 부정하라는 말씀이요, 모든 환경을 부정하라는 말씀인 것입니다.

예수님은 그것이 인간이 살아가기 위해 갖추어야 할 필연적인 조건임을 모르고 이런 말씀을 하신 것이 아니었습니다. 타락한 인간은 그러한 길을 밟고 올라서야만 소망의 한날을 맞이할 수 있다는 것을 아셨기 때문에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를 염려하지 말고 먼저 그 나라와 그 의를 구하라고 하셨던 것입니다. 먼저 그 나라와 그 의를 이루는 사람은 이 자연적인 법도권내에서 만물을 주관할 수 있어, 자연히 그러한 만물에 대한 염려는 할 필요가 없게 되기 때문에 하신 말씀입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 위에 오셔서 사탄으로부터 몇 가지의 시험을 받게 되었습니다. 40일 금식기간에 먼저 먹을 것으로 시험받았습니다. 사탄이 예수님 앞에 나타나 돌을 명하여 떡이 되게 하라고 했습니다. 이는 굶주린 인간들에게는 희소식일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이를 부정하고 자신이 먹을 것 때문에 오지 않았다는 것을 나타냈습니다. 오히려 하나님의 말씀을 주장함으로 말미암아 인간이 살아가는 실제 생활권내에 있어서의 모든 조건을 사탄 앞에 잃지 않았다는 입장을 세웠던 것입니다.

그때까지 인간은 물질을 중심삼은 투쟁역사를 거쳐왔는데, 예수님께서 사탄의 제1차적인 시험에 승리함으로 말미암아 그러한 물질을 중심삼은 투쟁역사를 종결시키게 되었던 것을 여러분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러면, 그다음 예수님은 어떠한 시험을 받게 되었던가. 예수님께서는 사탄에게 이끌려 교회의 성전 꼭대기에 서게 되었는데, 거기에서 “네가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뛰어내리라(마4:6)”는 시험을 받게 되었습니다.

이스라엘민족과 유대교를 지도할 수 있는 종교이념을 갖고 나타나신 예수님에게 `뛰어 내리라’는 이 말은 무슨 뜻입니까? 그것은 유대교적인 습관과 그들의 주장 앞에 굴복하여 그들의 지도자의 입장을 포기하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여기에서 사탄의 시험에 빠지지 않고 승리하셨습니다.

그 다음엔 무슨 시험이 있었습니까? 사탄은 예수님을 지극히 높은 산꼭대기에 올려놓고 천하만국과 그 영광을 보여주면서 “만일 내게 엎드려 경배하면 이 모든 것을 네게 주리라(마4:9)”고 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여기에서 우주적인 이념을 가지고 하나님의 나라, 즉 천국을 건설 하시려는 하나님의 뜻을 세워드리기 위해 사탄의 그러한 요구를 일축해 버리셨던 것입니다.

예수의 3대시험 승리의 의의와 성도의 사명
그러면 이러한 사실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가? 이 땅 위에 새로운 천지, 즉 천국을 건설할 수 있는 이념을 가진 예수님이었기 때문에, 그 뜻을 나타내는 실현과정에서 이와 같이 역사적인 불신의 모든 조건을 탕감하고 복귀한다는 상징적인 조건을 세우지 않으면 안 되었던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끝날을 맞이한 오늘날 여러분에게도 물질적인 조건을 중심한 투쟁이 벌어지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모든 인간이 그러한 물질적인 투쟁에서 승리하지 못하고 패배하게 된다면, 이땅은 자연히 암흑의 세계로 변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날 여러분은 그러한 물질적인 투쟁을 밟고 올라서 예수님의 천국의 이념을 받들고 나서야 하겠으며, 나아가 전세계 기독교인과 힘을 합하여 하나님의 나라를 이 땅 위에 건설해야 되겠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예수님께 옛날 이스라엘의 전체적인 가치에 비유할 수 있는 유대교단과 하나되어 세계를 복귀해야 할 사명이 있었던 것과 마찬가지로, 오늘날의 전세계 기독교인들에게도 세계를 대표할 수 있는 민주주의 이념과, 또 그 민주주의 이념의 기본이 되고 있는 기독교의 이념을 중심삼고 하나로 단결하여 하나님의 나라를 이 땅 위에 건설해야 할 사명이 있다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리고 여러분은 옛날 예수님께서 사탄의 모든 시험을 물리치고 승리하신 것과 마찬가지로, 여러분도 그러한 과정을 거쳐야 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끝날이 되면 물질적인 투쟁의 과정을 넘어가야 되고, 그다음에는 종교적인 투쟁의 과정을 넘어가야 되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분열과 모순 투쟁을 해결하고 이를 통할하는 종교가 출현한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시대를 상징한 것이 예수님이 치르신 시험이었던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어떠한 역경의 자리, 죽음 자리에서도 변치 않는 자신의 모습을 나타내신 것과 마찬가지로 여러분도 예수님의 그러한 인격을 닮아야 하겠습니다. 또한 끝날에 처한 오늘날 크리스챤들은 예수님의 세계적인 성전이념을 찾아 세워드리기 위해서는 과거에 좋아했던 어떤 것에 집착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또 여러분은 역사적인 사명을 갖고 이땅에 오셔서 걸으셨던 예수님의 그 생애노정에 부합되는 노정에 세워졌기 때문에, 여러분 앞에는 역사적인 싸움의 한때가 놓여 있다는 것을 알아야합니다.

지금까지 세계적인 영광을 누려 왔던 사탄이 최후의 싸움에 패배함으로써 하나님의 아들딸 앞에 굴복하고 경배하는 때가 반드시 와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와 같이 사탄을 굴복시키고 하나님의 뜻만이 나타날 수 있는 한날이 어서 속히 와야 되고, 또 그러한 일을 할 수 있는 하나의 사람이 나와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만일 그러한 한 존재가 나타나지 않으면, 예수님께서 먼저 그 나라와 그 의를 구하라고 외치셨던 그 뜻이 이 땅 위에 이루어질래야 이루어질 수 없다는 것을 여러분은 명심하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여러분이 살아가고 있는 이때는 어떤 때입니까? 여러분은 지금 물질의 시험을 거쳐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드려야 하는 때에 살고 있습니다. 즉 물질이 인간뿐만 아니라, 이 지상의 어떠한 주의 주장을 넘어서고 있으며 나아가서는 하나님까지 굴복시키려 하는 때에 우리는 살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때가 바로 끝날이라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되겠습니다.

그 나라 백성의 생활─그 나라와 그 의의 본질을 나타내는 생활
그러면 이땅의 어느누구나 이구동성으로 오늘날을 끝날이라고 말하고 있는 이 때, 즉, 역사적인 종결, 과학적인 종결, 윤리와 종교적인 종결을 예고하는 이러한 세계적인 종말시대에 처해 있는 여러분은 어떻게 해야 될 것인가. 예수님께서 외치시던 말씀, 즉 먼저 그 나라와 그 의를 구하라고 하신 말씀과 같이 자신의 모든 것을 생각하지 않고 이 땅 위에 오직 하나님의 나라와 하나님의 의를 세우기 위하여 불변의 충성을 다하는 사람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그리하여 여러분이 자신을 만 우주 앞에 자랑할 수 있어야 되겠고, 여러분은 하나님의 대신자의 사명을 완수하는 사람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즉, 그 나라의 본질적인 이념의 내용을 여러분 자체의 생활에 적용하여, 그것이 여러분 생애의 실정적인 가치를 형성하고, 영원한 미래를 약속하는 소망의 그 한날을 이루어 놓아야 되겠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만약 그러한 여러분이 되지 못한다면, 여러분은 하나님께서 아담 해와 타락이후 4000년 동안 수고하신 후 예수님을 보내시어 역사하 시게 한 뜻과, 예수님 이후 오늘날까지 예수와 성신을 합한 삼위신이 역사한 그 뜻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여러분은 이제 무엇을 찾아내야 할 것인가. 여러분은 그 나라와 그 의를 세우지 못하게 하는, 즉 천주적인 이념을 세우지 못하게 하는 불의의 조건들을 찾아내야 되겠습니다. 그리하여 여러분이 일신의 생활에서 투쟁하여 승리하고 하나님의 아들인 예수님의 대신 존재가 되어야 하겠다는 것입니다.

즉, 여러분 자신이 그 나라에 처할 수 있는 사람, 그 나라의 의의 백성이 되고자 한다면, 먹을 것 입을 것을 가지고 싸우는 그런 어리석은 사람이 되어서는 아니 되겠습니다. 먹는 문제, 마시는 문제, 입는 문제를 넘어서 사는 사람이 되어야 하겠고, 오히려 그러한 것이 자기에게 조금이라도 부여되면, 그것을 헐벗고 굶주리는 사람에게 나눠줄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심정이 어떠한 줄 아십니까? 한 조각의 빵이 있다고 하면 그 빵을 혼자 먹게 하지 않고 여러 사람에게 나눠주고 싶은 마음을 갖게 하는 것이 하나님의 심정이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런 심정을 대신했는데 예수그리스도 앞에 나타난 인간들은 그렇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오늘날 가정에 불화가 생기는 원인, 싸움이 벌어지는 원인은 어디 있습니까? 그것은 가정이 자신만을 위해 존재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먹을 것이 있다면 그것이 자기만 먹기 위해 있는 것으로 생각하기 때문에 싸움이 벌어지고 불화가 생겨나는 것입니다. 바로 이것이 죄의 화살이고 사탄이라는 것을 여러분은 명심해야 될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날 여러분은 먹는 문제를 해결해야 되겠고, 입는 문제를 해결해야 되겠습니다. 자신만을 위하려는 마음, 즉 가정불화의 조건을 타파하여야 되겠고, 바로 그러한 역사적인 모순을 밝고 올라서야 되겠다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여러분은 의식주(衣食住)의 모든 문제를 넘어서 하나님 앞에 참다운 승리자의 모습으로 나타나야 할 입장에 처해 있음을 잊어서는 아니 되겠습니다.

그러면, 당시 먼저 그 나라와 그 의를 구하라고 부르짖었던 예수님은 어떠한 입장에 계셨는가. 하나의 물건을 놓고도 그것을 대하는 하나님의 마음과 인간의 마음이 서로 차이가 있으면 안타깝고 서러운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의 마음과 자신의 마음이 하나된 상태에서 인간의 마음이 자신의 마음과 하나되기를 바라셨던 것입니다. 그런데, 인간들이 그분을 불신하고 반대함으로 말미암아 그들과 하나될 수 없었기 때문에 말할 수 없는 슬픔과 서러운 입장에 처해 있었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만일 여러분에게 먹을 것이 있다면 여러분은 무슨 생각을 하면서 먹어야 되느냐. 하나님의 본질과 그 나라의 본질을 그리워하면서 주고 싶은 사랑의 마음을 갖고 먹어야 하겠습니다. 남을 위해 희생하고 봉사하겠다는 마음을 갖고 먹을 것을 대해야 되겠습니다. 이러한 마음을 갖고 사는 사람이 되어야 한꺼번에 많은 보화를 가지게 되었다 할지라도 여러분은 그것을 자기 임의대로 처리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주고자 하시는 아버지의 마음이 조그마한 빵 한 조각을 통해서도 나타나고 있다는 것을 느끼면서 먹는 사람이 되어야 하겠고, 또 이 땅 위에 이루어져야 할 하나님의 뜻과 어려운 환경에 처해 있는 많은 불쌍한 사람들을 염려하면서 먹는 사람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이러한 사람이 되어야만, 그에게는 물질적인 곤고가 없게 되는 것입니다.

물질을 대하는 자세로 인해 찾아오는 축복과 저주
그런데, 오늘날 여러분은 그렇지 못한 입장에 있습니다. 여러분은 물질을 중심삼은 싸움에 허덕이고 있습니다. 여러분 한 자체를 하나님과 인연맺어 `이 물질을 통하여 주고자 하시는 아버지의 마음을 자신보다 더 잘 나타내 드릴 수 있고, 이 물질을 저보다 더 사랑할 수 있는 아버지의 아들딸이 있사옵니까? 이 물질이 저의 것이 아니라 아버지 것인 줄 아오니, 그에게 이 물질을 사용하게 하옵소서!’라고 할 수 있어야 되겠고, 또 여러분은 그 앞에 주어야 할 물질을 자신이 취하게 된다는 이러한 겸허한 마음을 가져야 되겠습니다. 그럴 때에 여러분 마음 속에 숨어 있던 본성이 발현될 수 있을 것이며, 여러분은 영원한 소망권내로 나아갈 수 있겠기에 예수님께서 물질을 사용하는 자세에 대해 말씀하셨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러면 이제 여러분들이 원수로 대해야 할 것이 무엇인가. 그것은 여러분에게 부여된 물질을 자신만을 위한 것이라 생각하는 사심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은 자신에게 빵 한 조각이라도 있다면 그것을 만인이 나눠먹기를 바라시는 하나님의 마음을 대신할 수 있어야 되겠습니다. 먹을 것이 있다면 그것을 먹기 이전에 가정을 위해 줄 수 있는 마음이 되어야 하겠고, 사회·민족·국가·세계인류를 위해 줄 수 있는 마음을 가져야 되겠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마음을 소유해야 인간은 정상적인 과정을 거쳐 완성할 수 있는데, 오늘날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것을 망각한 채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을 여러분은 안타깝게 여겨야 할 것이며, 그것이 또한 타락의 입장임을 알아야 하겠습니다.

그러면 오늘날 원수는 무엇을 통해 찾아 들어오고 있습니까? 물질적인 조건을 통하여 찾아들어오고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복도 물질을 통해서 들어오고 있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물질을 통하여 하나님과 우리의 원수가 동시에 찾아들어온다는 것을 여러분은 확실히 알고. 물질을 통하여 확고한 신앙의 중심을 세울 줄 아는 사람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어떠한 것이든지 하나의 중심을 세우게 되면 거기에는 자연히 상대적인 존재가 발생하는 것입니다. 완전한 플러스가 있으면 완전한 마이너스는 자연히 발생하는 것이 우주의 원칙으로 되어 있기 때문에 여러분이 이 땅위에서 원칙적인 신앙의 핵심, 하나의 기준을 찾아세워야 되겠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그러한 원칙을 아셨기 때문에 먼저 그 나라와 그 의를 구하라고 부르짖었다는 것을 여러분은 분명히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다음 여러분이 알아야 할 것은 무엇입니까? 먹는 것 때문에 식구끼리 싸움이 벌어진다는 것입니다. 먹는 것 때문에 시어머니·며느리·형님·동생 간에 싸움이 벌어지고, 국가면 국가끼리 싸움이 벌어지고, 친척이면 친척끼리 싸움이 벌어지게 된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도 그것을 밟고 올라서기 위하여 가정을 위해, 사회·국가·세계를 위하여 애달픈 마음을 갖고 사셨던 것이며, 그 나라와 그 의를 건설하지 못해 안타까운 심정을 토로하셨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날 여러분도 예수님의 그러한 심정을 체휼하고 그 인격을 닮을 줄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다음엔 여러분 앞에 입는 것 때문에 싸움이 벌어지게 됩니다. 여러분의 신앙노정에 반드시 입는 문제를 해결하고 넘어가지 않으면 안 될 과정이 있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날 여러분은 사탄의 어떠한 참소에도 구애됨이 없이 그러한 문제를 자유자재로 해결할 수 있어야 되겠다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여러분의 먹고 입는 문제가 사탄이 되는 동시에, 사탄이 활동할 수 있는 활동의 실천장이 된다는 것을 알아야 하겠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제 여러분이 하는 일 전체에는 사탄이 침범하려고 노리고 있다는 것을 알고 사탄이 침범할 수 있는 조건도 제시하지 않는 여러분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날 여러분은 자신만을 위해 살아서는 안 되겠습니다. 보다 큰 목적을 위해 살아야 되겠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가정에 속해 있으면 그 가정을 위해 살게 될 때 그것은 여러분 자신을 위해 사는 것이 될 것이요, 하나의 국가에 속해 있으면 그 국가를 위해 살게 될 때, 그것은 또한 여러분 자신을 위해 사는 것이 됩니다. 또 여러분이 하늘을 위해서 살게 될 때, 여러분은 진정 자신을 위해서 사는 입장이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날 여러분은 이러한 모든 사실이 여러분의 생활환경을 통해서 이루어지고 나타나고 있다는 것을 명심해야 될 것입니다.

이제 여러분이 하나님의 뜻을 위하고, 하나님의 심정을 체휼하고, 그 나라와 그 의를 찾아 세우기 위해 나섰다면 여러분은 어떻게 해야 될 것인가. 여러분에게 먹을 것이 있다면 여러분보다 어려운 환경에 있는 사람에게 그것을 다 나눠주고 자신을 굶을 수 있는 마음, 또 먹을 것이 있다면 오히려 여러분을 핍박하는 사람에게 줄 수 있는 마음을 지닌 사람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그리하여 여러분 자신은 `내가 실천적인 면에 있어서 주고 싶은 마음에 사무쳐 생활하고 있는가, 봉사하기 위한 이념에 사무쳐 생활하고 있는가, 아니면 오늘의 이 현실을 박차고 그 나라의 이념을 실현하기 위해 몸부림 치고 있는가’를 반성할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겠다는 것입니다. 그럴 때에 여러분은 바울이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롬7:24)”라고 탄식하였던 그 심정을 느낄 수 있을 것입니다.

예수님의 애달픈 심정의 동반자
이와 같이 여러분은 여러분의 현실에서 주고 싶은 마음에 사무쳐 생애 전체의 가치를 찾아세우는 사명이 있음을 알아야 되겠고, 또 그러한 사명을 완수하기 위하여 이 땅 위의 소망의 실체로 오셨던 분이 바로 2000년 전의 예수님이었다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런데 오늘날 인간들은 예수님이 그렇게 주고 싶은 마음에 사무쳐 사신 분인 줄 모르고 있습니다. 또한 여러분이 먹는 빵 한 조각에, 입는 한 벌의 옷에 하나님의 애달픈 눈물자국이 어려 있다는 것을 모르고 살아가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슬픔이요, 탄식의 조건이라는 것을 여러분은 확실히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러면, 이제 다시 오셔야 할 그분, 그 주님은 어떠한 분으로 오실 것인가. 그분 역시 하나님의 나라를 건설하기 위하여, 주기 위한 이념의 주인공으로 오신다는 것입니다. 영원히 변치 않는 천리원칙을 통하여, 자녀에 대한 부모의 사랑을 갖고 그 사랑을 오늘날 우리 인간에게 주기 위하여 다시 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은 오시는 그 주님을 통해서 인간 조상의 타락으로 인하여 잃어버린 인간의 가치를 되찾기 위해 지금까지 6000년 동안 섭리해 나오신 하나님의 애달픈 심정을 상속받아야 할 것입니다. 그리하여 여러분은 이 땅 위에 오셨다 제물로 가신 예수님의 애달픈 심정의 동반자의 자리까지 나아가야 되겠습니다.

만일 오늘날 신앙자들이 그런 자리까지 나아가지 못한다면 이 땅 위에 기독신자가 아무리 많다 할지라도 기독교는 발전할 수 없을 것이며, 나라에 백성이 아무리 많다 할지라도 그 나라는 번영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날 여러분들은 예고하신 하나님의 뜻을 상속받아 예수님께서 이땅을 대해 애달파하셨던 그 심정을 여러분의 생활권내에서 체휼하는 사람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지금 이 시간도 주고 싶은 마음에 사무쳐 있는 사람이 나타나기를 바라고 계시며, 예수님께서는 자기를 죽인 이땅의 모든 악의 세력을 밟고 올라설 수 있는 사람이 나타나기를 고대하고 있습니다. 만일 그러한 존재가 나타나게 되면 그는 그야말로 이 사회의 주인공이 되고, 이 나라의 주인공이 되는데, 아직까지 그러한 한 사람이 나타나지 않은 것이 하나님과 예수님의 안타까움이라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러한 주인공이 되기 위하여 이 땅 위에 왔다 갔던 수많은 선지 선열들이 있었는데, 역사상의 선조들은 그들을 매장하고, 또 핍박하고 조롱하였던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날 한 자체를 세워 그러한 역사적인 모든 잘못을 청산짓고자 하는 것이 여러분을 대한 하나님의 소망이라는 것입니다.

이제 그러한 하나님의 소망의 뜻을 이루어 드리려면 여러분은 어떻게 해야 될 것이냐? 먼저 하나님의 나라와 하나님의 이를 위하여 피흘리는 십자가의 길을 참고 가셨던 예수 그리스도의 뒤를 따르는 사람이 되어야 하겠으며, 다음에는 지금까지 6000년 역사 속에서 수많은 선지 선열들이 자기 일신의 영광을 저버리고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하여 수고하였던 그 길을 뒤따르는 사람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그런데 만일 여러분이 그러한 길을 가지 않고, 자신의 어떠한 영광을 위한 길을 가게 되면, 여러분은 하나님 앞에 또는 수많은 선지 선열 앞에 떳떳이 나서지 못할 것입니다. 또 죽어 영계에 가서도 아버지 앞에 나서지 못하고, 아버지의 사랑의 품에 안기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즉, 믿는 것도 자기를 위해 믿고, 죽는 것도 자기만이 구원을 얻기 위해 죽는 사람은 저나라에 가서도 아버지 앞에 떳떳이 설 수 없다는 것을 여러분은 명심해야 되겠습니다.

그 나라와 그 의를 찾아 세우는 백성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은 자신을 부정하고 그 나라와 그 의를 위해 사는 사람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어떠한 어려운 환경에 부딪치더라도, 여러분은 자신을 대한 아버지의 소망이 있음을 생각하면서 그 환경과 싸워 이기는 사람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그러한 여러분이 되어야 비로소 하나님의 참다운 아들딸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나라를 건설할 수 있는 사람은 어떠한 사람입니까? 자기 일신을 부정하고 애달픈 마음으로 하늘을 위하는 사람인 것입니다. 자기를 부정하고 사회와 민족·국가·세계를 위하는 사람이 바로 하나님의 나라를 건설할 수 있는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나아가 국가와 세계를 부정 하고라도 하늘을 위하는 사람이 천국을 건설할 수 있는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또 어떠한 서러운 환경에 부딪치더라도 자지 일신 때문에 서러워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와 국가·세계, 나아가서는 하늘을 위해 서러워하는 사람이어야 하나님의 나라를 건설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날 여러분은 여러분 개인의 어떠한 욕망을 충족시키기 위해 애쓸 것이 아니라, 보다 더 큰 목적을 위하여 희생하고 봉사하는 신앙 생활을 하지 않으면 안 되겠습니다. 그리하여 오직 하나님의 뜻과 인류를 위해 수고하셨던 예수님의 심정적 기준까지 나아가야 되겠고, 지금까지 수고해 나오신 하나님의 애달픈 심정을 위로해 드리는 하나님의 참자녀의 자리까지 나아가야 되겠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날 여러분은 불의를 보면 분개하는 마음을 가지고, 또 주고 싶어하는 하나님의 사랑을 마음을 지니고, 이 세상 끝까지라도 나아가 하나님의 나라와 하나님의 의를 찾아세우기 위하여 수고해야 되겠고, 나아가 애달픈 가운데 인류를 구원하기 위해 지금까지 수고해 오신 하나님의 심정을 위로할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여러분이 하나님의 나라와 하나님의 의를 찾아세우는 그 과정에서 사탄과의 싸움에 패배하지 않고 승리하여, 여러분이 개인으로부터 가정·사회·민족·국가·세계를 하나로 연결시킬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즉, 여러분이 어떠한 자리에 처하든지 그곳에서 사탄과 싸워 승리하는 사람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사회에 나가면 그 사회의 어떠한 환경 속에서도 사탄과 싸워 승리해야겠으며, 국가에 나가면 그 국가의 제일 어려운 문제를 책임지고 나서서 사탄들과 싸워 승리하는 사람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만약 이러한 사람이 나타난다면 우리가 보기에 당장엔 망하는 것 같지만, 뒤에는 흥하게 된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될 것입니다. 또 바로 그런 사람이 어느 집안이나 직장·단체·국가의 주인인 것입니다. 가정에서 부모를 위해 자신의 생명을 바쳐 효도의 도리를 다하고, 남편과 아내가 각각 열남 열녀의 도리를 다하고, 국왕을 위해 충신의 도리를 다하는 사람이 바로 그 가정의 주인이며 그 국가의 주인인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날 여러분도 그와 같은 사람이 되어 지금까지의 6000년 섭리역사의 목적을 대신하고, 오늘의 현실적인 우주적 이념을 대신하여 어떠한 골고다의 길들이 가로막히더라도 `아버지여! 감사합니다’ 하면서 늠름하게 그것을 넘어설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그리하여 여러분의 훌륭한 모습이 여러분의 마음 속에서 우러나오고 몸으로 화하여, 사탄까지도 여러분을 존경하고 따르게 될 때, 비로소 여러분은 그 나라와 그 의를 찾아세우는 백성으로서 나설 수 있다는 것을 이 시간 명심하시기 바랍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