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ather earnestly sang with her with his eyes closed

Father earnestly sang with her with his eyes closed
Sun Myung Moon and Yeong-seop Song
April 7, 2012
Hoon Dok Hae
Cheon Hwa Gung on 3.17 H.C.

Mrs. McDevitt read Father’s speech from the Sermons of the Rev. Moon #47, “The Path Our Families Take.”

After the reading, she sang “천년바위” (Rock of Ages) and Father earnestly sang with her with his eyes closed.

The following are excerpts of the report of Rev. Yeong-seop Song from Japan.

“When I came to Las Vegas this time and saw True Parents, I felt that they seemed very happy (Father said, ‘아이고’ [ouch] then laughed) and healthy. I heard the mood of Hoon Dok Hae has also been great. All Japanese members are always missing the place where True Parents stay. When I was assigned for the mission in Japan and went there four years ago, I saw 70 policemen at our headquarters. The atmosphere was as if that would be the beginning of the end of the Japanese Unification Church, and the members’ spirit was going down. Father had sent Kook Jin Nim two days prior to my arrival and I felt that I must raise their faith up with Kook Jin Nim.

What I have realized in Japan was even though I did things I did only 5% and nothing could be possible without True Parents’ pressing forward. It has been said that the earthquake would hit Japan between the end of January and early 2012, however Father sent Mother to Japan. Her 3-day stay for the meeting of FFWPU and WFWPU in Japan would have been a great worry for me but I heard from Mrs. McDevitt that Mother was to stay in Japan for eight days. I was happy to receive Mother but was worried so much about her. As you know for an earthquake, 5 minutes are enough to destroy Japan. God told me ‘Don’t worry,’ but I know there is still human responsibility.

It’s been 5 years since Mother last visited Japan. At the welcome party for her, she pulled out and showed Father’s wallet to us. (Father said ‘지갑이야. / It’s a wallet’) ‘ She said when she was leaving, Father gave it to her. His wallet contains 3,000,000 Won and Father’s ID card and as such, if he doesn’t have it with him he can’t go anywhere. When we saw the wallet all the participants including me cried feeling ‘Father loves us and Japan so much.’ When you visit our previous HQ in Korea located at Cheong Pa Dong, you find on Father’s desk the models of 거북선 (Geo Buk Seon: the Turtle Ship) of Korea and 金閣寺 (Kinkakuji: the Golden Pavilion) of Japan. So when Japanese members visit there and see it, they were all moved feeling how much Father was concerned about Japan in his early days.

I later heard that Father had said in Las Vegas ‘나도 가고 싶다 / I want to go too.’ Father gave me a specific purpose and I couldn’t fulfill it yet and I have been so sorry. I was determined not to shed tears but when I saw her this time in Japan I couldn’t stop my tears. I later heard that many members had the same experience.

The bill of 50,000 Won has the portrait of 신사임당 (Shin Sa Im Dang: Mother of Scholar Yul Gok Lee), and when she gave the money from the wallet, she explained the story of the mother. I think her messages are always simple and clear as well as very deep.

Through her visit, I can say that the members could feel the love of True Parents and could revive their faith. We tried to do our best to attend to Mother but we made some mistakes. For example, when she asked us to prepare her some Korean instant noodles, they brought her coffee, and when she asked for coffee, they brought her something else because they don’t understand her in Korean. I was deeply ashamed. (True Parents smiled at his comments) So I told the regional leaders, ‘When True Parents come to your region, you should choose the members who know Korean to attend to them,’ and I started the campaign of studying Korean in the Japanese church.

After Mother left Japan, the earthquake started again, which had a magnitude of 5 to 6. The recent one had a magnitude of 6.9. I heard from Dae Mo Nim that after Mother’s departure from japan, Japan would shake again. This time about 10 locations including Sendai had light earthquakes that had a magnitude between 2 to 3.

On April 1 (of the solar calendar), I prayed to God ‘Thank you Heavenly Father, I can pray in front of you without dying.’ I live every single day that way. According to the prediction of the Mayan culture, Dec. 21 of this year is the turning point of human history, as such, if Japan can survive that day, I will offer Og mansei to Heaven. Mother would say again that I speak too much so I will stop myself here. Thank you.”

After the report, Rev. Song sang “내 마음 별과 같이,” (My Heart is like the Stars) and Father listened to the song with eyes closed.

Korean Transcript:

미국 천화궁
다음은 훈독회 내용중 일부입니다.
송영석 회장 보고
어머님이 오시는 때에. 지진이라는 것이 그냥 5분 흔들어 버리면 되는 거지. 몇 시간 하는 거 아니거든요. 2, 3분 흔들어서 다 죽여 버리니까. 그래서 걱정이 되었지만, 하늘에서 그래요. “염려하지 말라. 내가 지키고 있다.” 그래서 안심하였지만 그래도 우리 인간 책임분담이 있기 때문에 센다이 지방에 어머님을 모시는 것을 뺐습니다. 뺐더니 그 사람들이 우리를 왜 찬밥 먹이느냐, 뺀다면 공항에서라도 들려서 우리 식구들이 뵙고 가도록 해 달라. 그렇지 않아도 지금 지진으로 3만여 명이 죽고 재산 피해가 엄청나게 났는데 그런 억울하고 서러움 가운데 있는 우리들을 또 한번 이렇게 상처를 주기냐. 그래서 제가 그것을 결정해놓고 달래느라고 정말 혼났습니다. 그리고 그 다음에 순회 가면 어떤 말을 들을지 걱정도 되구요.
그런 가운데 있었습니다만, 하여튼 지구장 중심삼고 교구장들을 순회 가서 다 타일렀습니다. 걱정하지 마라. 우리가 어머님을 귀하게 모시자는데 의의가 있는 거지 내 지방에 꼭 오셨다가야 한다는 것에 집착하지 마라. 이렇게 타이르고 해가지고 어머님을 적시에, 5년만에 오셨어요. 어머님은 일본 나라 실체시거든요.
그래 오셔서 식구들이 정말로 그리운 어머니 그리운 아버지를 상상으로 모시고 가다가 이제 진짜 실체의 어머님이 오신다니까 기다렸는데, 어머님이 오시자마자 첫날 환영만찬회에서 첫 번째 아버님 지갑을 꺼내시는 거예요. 이게 아버님이 내가 떠나오려고 할 때 아버님이 지갑을 가져오라 해가지고 지갑을 갖다 어머님을 주셨는데 그 속에는 돈이 300만원이 들어있어요. 그리고 아버님 아이디(I.D) 카드까지 다 들어있어요. 그렇기 때문에 그 지갑만 없으면 아버님 못 움직이시는 거예요.
그렇게 통째로 다 주시었는데 사실 그때 저도 울었지만, 거기 있는 사람들이 다 울었습니다. 정말로 아버님이 이렇게 우리 일본을 사랑하는구나. 아버님이 일본을 놓고 말씀하시는 것은 축복이요 관심이요, 관심 있는 곳에 축복이 있다고 그랬어요.
그렇기 때문에 내가 알고 있기로는 아버님이 일본을 얼마나 사랑하셨느냐? 청파동 2층 본부교회 아버님 기도실에 가 보면 거북선하고 일본의 금각사가 있어요. 거기에서 일본 식구들이 청파동 전본부교회를 방문해가지고 뜨거운 감격을 받아요. 이야, 초창기에 아버님이 거북선하고 금각사하고, 금각사는 교토에 있거든요. 그것을 놓고 기도하셨다는 것을 보고 일본사람들이 무릎을 꿇어버리는 겁니다. 감동하는 겁니다. 저도 가서 보니까 감동을 하고 같이 간 식구들하고 보니까 거기 가서 넋을 잃고 그것을 쳐다보고 있더라구요.
그래서 아버님이 이러신 아버님이시고, 이번에 어머님을 보낼 때도 그렇게, 당신이 라스베이거스에 가서 그러셨대요. ‘나도 가고 싶다.’ 그러셨다는 거예요. 제가 그 이야기를 듣고 얼마나 억장이 무너지는지, ‘내가 여기에 보낸 뜻은 이 문제를 해결해야 되는데 이 문제도 해결하지 못하고 네가 지금 3년을 지나고 있으니 네가 지금 네 본분을 수행하고 있는 것이냐’, 이럴 정도로 제가 고통스러운 경지에서 부모님을 모시게 됩니다. 그러니까 눈물이 안 나올 수가 없어요.
어머님 보자마자 눈물을 안 흘리려고 이를 악 물었는데 눈물을 막 쏟아지는 거예요. 이건 내 눈물이 아니에요. 그런데 그때에 일본 식구들도 다 울었다고 그러더라구요. 여러 사람이 얘기를 해요. 회장님이 눈물 지을 때 우리가 얼마나 고통스럽고 얼마나 회개의 눈물을 흘렸는지 모른다 그런 얘기를 해요. 그래서 내가 어머님께 두 번째 또 불러서 노래를 시키셨는데 그때도 또 눈물이 나와서 내 이제부터는 안 울기로 작정했다고 했는데도 또 눈물이 나오는 거예요.
그렇게 해서 8일동안 참어머님께서 부모님의 지갑과 함께 오셔서 그 돈을 세 등분 해서 나누어 주시더라구요. 신사임당이 있는 5만원짜리인데 신사임당에 대한 유래를 설명하면서 순결해야 된다고 하는 원리를 말씀하셨습니다. 어머님은 간단 명료 하시면서도 굉장히 의미가 깊어요. 그리고 한 마디도 뺄 것이 없는 그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래서 참 일본 식구들이 아마 좀 부모님한테 더더욱 가까이 가는 그런 계기가 되지 않았나 이렇게 생각이 듭니다.
이번에 8일동안 다녀간 뒤에 일본이 상당히 심정적으로 안정이 되고 새로운 결의를 할 수 있었습니다. 이번에 저희들이 어머님이 가신 후에 평가회를 네 시간하고 반성했습니다. 잘모신 것도 있지만 못 모신 부분도 있어요. 어머님이 라면 끓여오라고 하면 커피 가져오고 커피 가져오라고 하면 딴 거 가져오고, 말이 안 통하니까.
아이고 참. 내가 얼마나 면목이 없는지. 지구장한테 지구장, 앞으로는 부모님 모시려면 일본 사람이 모실래도 한국말 배워. 말도 알아듣지 못하는 사람이 서빙 하는 게 어디 있냐고, 이렇게 해가지고 평가할 때는 그냥 호되게 꾸중을 했습니다만, 하여튼 그래서 앞으로는 부모님을 모시게 될 때는 모조건 일본 사람이든 한국 사람이든 천일국 사람으로 한국말 할 수 있어야 된다. 한국말 배우기 운동을 이제 전개하고 있는 이런 계기가 되었습니다.
어머님이 8일동안 마치고 가니까 그 이튿날부터 지진이 흔드는 거예요. 어머님. 지진이 와쾅쾅쾅 5도 6도 흔들리는 거예요. 그러더니만 얼마 전에는 6.8도까지 와버렸어요. 그리고 마그네슘이 5.9 이렇게 오는데, 대모님도 그러세요. 어머님이 떠나신 뒤에 또 흔든다.
이번에 며칠 전에 제가 올 때에 열 몇 군데가 흔들렸어요. 센다이에서부터. 후쿠시마로 해서 이바라기로 해서 도쿄까지 2도 3도 4도 5도 6도로 막 흔드는 거예요. 이야 그래서 저는 3월 31일날 제가 끝나고 4월 1일날 기도하면서 ‘하나님 감사합니다. 오늘도 이렇게끔 살아서 하나님 앞에 감사 기도를 드립니다.’ 저는 하루하루를 늘 그렇게 살아갑니다.
금년도 12월 21일이면 마야문명의 달력이 없어져버리거든요. 그렇기 때문에 일본이 금년이 12월 21일까지만 넘어가면 제가 억만세를 수백 번 부르고 더 열심히 해야겠다 지금 그렇게 생각하면서 하루하루를 살아가는데, 나는 그것을 그때부터 생각하고 내가 죽어도 통일교회에다 혀를 박고 죽어야지 배신하고 죽어서는 안 되겠다 그때 결심한 거예요. 그때.
그래서 오늘 아침에 어머님, 길게 얘기 하지 않기로 했습니다. 여기까지만 얘기하고 아버님 열심히 하겠습니다. (웃음)

(아버님 말씀)
저렇게 방랑아들의 신세로 살지만 방랑아들이 좋아하면서 살 수 있는 길이 그 가운데 있는 모양이야. 죽지 않고 떨어지지 않고 따라오거든.
나도 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