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SG. Book 7. Chapter 1. Section 3-2 The path of a filial son – 효자의 길

② 효자의 길
3.2. The path of a filial son

선생님은 배가 고파 지쳐 쓰러지는 한이 있어도 어떻게 하면 하나님이 염려하는 그 길을 내가 앞놓아 갈 것이냐, 짊어질 수 있는 십자가의 길이 있다면 어떻게 그 길을 갈 것이냐, 하는 것을 생각했습니다.
Even if I had to collapse in hunger and fatigue, I thought about how I was going to go forward on the path knowing how concerned God was, and how I was going to shoulder this cross, if needed, along the way.

그런데 여러분들은 이러한 길을 가려고 준비하지 않고 있습니다.
Yet, you are not preparing yourselves to go on this path.

오늘날 여러분들은 모심으로 구원받는다고 하는 것을 알면서도 뻔뻔스럽게 바라보고 있습니다.
Even though you now know that you will be saved through attendance, you still look at me impudently.

그런 마음에서 멈추면 안 됩니다.
You should not continue with that kind of mind. (13-233, 1964.3.22)

선생님이 무엇을 하시는지 모르면 밤잠이 안 와서 한밤중에라도 뛰어와서 물어보고 갈 수 있는 그런 생활을 해야 합니다.
You should live your life in such a way that if you do not know what I am doing, you would not be able to sleep and would run out to ask me, even in the middle of the night.

그래서 모심으로 구원받는다고 했습니다.
That is why I said that salvation comes through attendance.

선생님은 하나님에 대해 언제나 그렇게 삽니다. 촌분(寸分)도 방심하지 못합니다.
I always live with this attitude towards God. This does not leave my mind for a second. (21-68, 1968.9.9)

여러분은 시의시대, 즉 모심의 생활을 하는 시대에 있어서 정확한 중심을 두고 나가야 됩니다.
In the age of justification by living the life of attendance, all of you must establish the correct center and go forward from there.

하나님을 모시는 데에는 법도가 있습니다.
In the place where you attend God there is law.

그 법도를 어길 때에는 하나님은 무척 노여워하십니다.
When you break that law, God is very displeased.

자식을 사랑하는 부모가 자식의 말 한마디에 가슴에 못이 박혔다 빠졌다 하는 것과 같이,
With parents who love their children deeply, just one word from the child can be enough to drive a nail into the parents’ heart.

하나님도 인간을 사랑하시기 때문에 노여움이 많으신 분입니다.
Likewise, since God loves humankind so much, He can also be deeply hurt by them.

자칫 잘못하면 하나님으로부터 노여움을 사게 됩니다.
If you make even the slightest of mistakes, it will incur His anger.

그렇기 때문에 언제나 선생님도 선생님대로 하나님을 기쁘게 해드리려고 합니다.
For that reason, I always have a strong desire to be a source of God’s joy.
(17-287, 1967.2.151)

여러분도 여러분을 생각해 주는 사람을 찾아가지요?
Don’t you want to go to the person who thinks about you?

하나님도 마찬가지입니다.
It is the same for God.

그 하나님을 점령할 수 있는 길은 누구보다 하나님을 생각하고 하나님을 위해 봉헌하겠다고 하는 그 사람을 중심삼고 하나님은 찾아가는 겁니다.
The way to capture God is to think about Him more than anyone else. God seeks out those who are thinking of dedicating themselves to Him. (128-172, 1983.6.12)

선생님은 하나님 앞에 솜바지저고리가 다 젖도록 기도한 적이 몇 번인지 모르고,
I do not know how many times I prayed to such an extent that all my clothing became wet.

칼을 가지고 뱃가죽을 찌르며 맹세한 적이 몇 번인지 모르며,
I don’t know how many times I pledged before God with a knife in my hand, jabbing my stomach.

죽음의 고비를 넘기면서 마음을 굳게 다짐한 적이 몇천만 번인지 모릅니다.
I don’t know how many thousands of times I made a firm resolution before God while crossing over the pinnacle of death. (19-19, 1967.11.5)

인간에게 있어서는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첫째 계명인데, 사랑하는데는 죽도록 사랑해야 됩니까, 일시적으로 사랑해야 됩니까?
For humankind, loving God is the first commandment. So, should you love God your whole life or temporarily?

여러분은 하나님을 죽도록 사랑할래요, 죽도록 사랑하지 않을래요?
Will you love God your entire life or not?

벼락을 맞아 죽더라도 사랑해야 됩니다.
You should love God even if a thunderbolt hits you and you die.

하나님을 죽도록 사랑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You must love God with your life.

죽도록 사랑해야 된다면 죽기 전까지는 못할 것이 없다는 것입니다.
If you love Him with your life, then, until your death, you can do anything.
(37-25, 1970.12.22)

여러분은 눈이 뭉그러지고 코가 메이도록 울면서 그리워해야 합니다.
You have to long for God until your eyes feel like crumbling and your nose is full and stuffy.

사람이 너무 울면 가슴이 아픕니다.
If a person cries excessively, his chest aches.

그만큼 사무치게 그리워해야 합니다.
That’s how much you have to long for God. Even when crying out,

‘아버지!’ 하고 부르는데 있어 사형장에 끌려가는 아들의 입장에서 아버지를 부르는 사람도 있을 것이요, 다른 먼 나라로 떠나는 아들의 입장에서 애절하게 아버지를 부르는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Father,” you have to say it as if you were a son who is being dragged to the execution ground or as a son who is leaving for a far off country.

그러므로 하나님 아버지를 부를 때 그런 기준 이상이 되어야 됩니다.
In order to call out “Heavenly Father,” we must have a higher standard than that. (50-288, 1971.11.8)

백두산 꼭대기에 올라가서 거기에 반석을 갈아 밭을 일궈 가지고 감자를 심어 그 감자로 하나님을 봉양할 수 있어요?
Until now, I have not managed just on my own. Can you go up to the summit of Mt. Baekdu, remove the stones, plow a field, plant potatoes, and serve God with those potatoes?

그거 해야 합니다. 그 때는 소가 없어서 사랑하는 아내를 소 삼아 밭을 일구었다면 벼락을 맞겠어요, 안 맞겠어요?
You should do that. Would you be hit by lightning if you made your wife plow that field because you did not have an ox?

아내를 소 삼아서 밭을 일군다 할 때 하나님이 ‘야야 ! 그만 둬라!’ 한다면 하겠어요?
Would you stop if God said, “Hey, stop it!” when He saw you plowing the field, using your beloved wife as an ox?

‘네 마음을 다하고 네 뜻을 다하고 네 정성을 다하라!’ 했으니 하겠어요? 해야 합니다.
Will you still attend with all your heart, with your entire mind, and with all your devotion? You must. (37-25, 1970.12.22)

여러분은 현재 어디에 있습니까? 밤이나 낮이나, 언제 어디 가든 선생님과 더불어 보조를 맞추어 살고 있습니까?
Where do you currently reside? Do you live in concert with me day and night, whenever or wherever you go?

지금까지 선생님은 이 머리 가지고 살아온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과 더불어 하나님이 가는 방향에 보조를 맞추면서 모든 생명을 다 투입하며 살아온 것입니다.
I have lived with God, and walked in the same direction with Him, and in step with Him, investing my life completely. (31-320, 1970.6.7)

선생님은 하루하루의 생활에 있어서, 중요한 문제는 반드시 하나님께 기도해서 해결합니다. 주먹구구식으로 하지 않는다는 겁니다.
I resolve the important issues in my daily life by praying to God. I do not do it casually. (43-33, 1971.4.11)

이 길을 가기 위해서는 미욱해야 됩니다.
You have to be a bit stupid in order to follow this path.

충신들은 어떻게 보면 미욱한 사람들입니다.
If you look at it in a certain way, loyal subjects were rather foolish people.

조금은 미련해 보입니다.
They seemed to be somewhat stupid.

곰같은 성격이 있다는 것입니다.
They had the character of a bear.

자기 팔을 잘리고도 ‘아이구, 여기 덜 잘랐다, 더 잘라라!’ 하는, 그와 같은 미욱한 점이 있어야 합니다.
You have to have the kind of slow-wittedness that, if you had your arm cut off, you would simply say, “Oh, this is not cut enough. Please cut off some more.”

곰이나 멧돼지는 총에 맞아서 걸리적거리는 부분이 있으면 그 부분을 입으로 잘라 버리고 도망갑니다.
If bears or wild boars get shot and are slowed down by the wound, they will chew off the wounded limb and run away.

죽음은 나중에 생각하고 우선 걸리적거리는 것을 잘라 버립니다.
The last thing they think of is death, and the first thing on their minds is the wound that is slowing them down.

그런 미욱한 무엇이 있어야 됩니다.
You have to have this kind of slow-wittedness.

충신 열사는 미욱해야 합니다.
Patriots and heroes were a bit foolish.

조금은 어리석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You have to be a little stupid. (26-143, 1969.10.19)

하나님을 해방해야 합니다.
We should liberate God.

참된 하나님의 권위를 중심삼고 이상경에서 인류 시조와 함께 무한한 행복을
찬양하며 살 수 있는 가운데 모심을 받으면서 지내실 하나님이 이렇게 비참하게 됐다는 사실을 알았기 때문에, 그 하나님을 우리의 손으로 해방시키자는 것입니다.
With the authority of the true God, our first ancestors were to attend God in an ideal world where He could live with them while singing praises amid unlimited bliss. Yet, since we now know that God became miserable by our hands, so likewise, we should liberate Him with our own hands.

이것은 놀라운 제안입니다.
This is an amazing proposal.

그러한 내용이 종교계에서 나왔다는 사실은 하나님에게 있어서는 지극히 기쁜 소식입니다. 복음 중의 복음입니다.
It is extremely joyful news for God to hear such things coming from the religious realm. It is the greatest of all gospels.

이렇게 볼 때, 불교를 세우신 분도 하나님이요,
When we think of this, it was God who established Buddhism.

유교를 세우신 분도 하나님이요,
He was the one who established Confucianism.

회회교를 세우신 분도 하나님이요,
He was the one who established the Islamic faith.

기독교를 세우신 분도 하나님이시니,
And He was the one who established Christianity.

모든 종교가 쌍수를 들고 환영해야 합니다.
All religions should raise both hands and welcome Him. (176-242, 1988.5.11)

선생님은 지금까지 뜻을 위해 고생해 나왔고, 지금도 자나깨나 그 길을 가고 있습니다.
I have experienced hardships to this day for the sake of God’s will.

선생님을 가까이에서 모셔 보지 못한 사람은 선생님을 잘 알지 못합니다.
Even now, I travel on this path day and night. Those who have not attended me closely do not know me well.

선생님은 자다가 눈만 뜨면 엎드려 기도합니다.
The minute I open my eyes from sleep I kneel on the floor and pray.

왜 그러한 생활을 하고 있느냐?
Why do I live in such a way?

이 한밤에도 세계에 널려 있는 사랑하는 자녀들이 나를 의지하며 하나님을 위해 기도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It is because, even in the middle of the night, my beloved children spread across the world depend on me as they pray to God.

내가 정성으로 같이하지 못하더라도 거기에 못지 않게 박자를 맞춰 줘야 할 것이 아니겠습니까?
Even though I cannot offer devotion together with them, shouldn’t I keep time with them just the same?

선생님이 잠을 잘 때에는 모르니까 하나님께서도 용서해 주시는 것입니다.
Since I am unaware of this when I am asleep, even God forgives me.

그 시간에는 자식이 고단해서 잠자게 되면 아버지가 지켜보는 것과 마찬가지로 하나님이 대신 기도해 주신다는 것입니다.
When a child falls asleep in fatigue at that hour, God prays on his behalf in the same way a father watches over his child. (26-138, 1969.10.19)

레버런 문은 어떤 사람이냐? 한 가지 재간 밖에 없는 사람입니다. 미욱하게 그저 똑바로만 가는 사람입니다.
What kind of person am I? I am a person with only one talent. I am a person who just goes straight ahead no matter what.

아, 입을 좀 다물고 적당히 돌아가면 될텐데, 왜 자꾸 욕먹게끔 작용을 하고 그러느냐는 겁니다.
Some ask why I always do things which are spoken ill of, instead of quietly going around the other way with my mouth shut.

그것은 많은 사람들의 반대를 받아야 한 고개를 넘어가기 때문입니다.
It is because the pinnacle can only be overcome by receiving opposition from many people.

그런데 여러분들은 돌아갈 생각을 하고 있지요?
But you are thinking of taking a detour, aren’t you?

그러면 왜 세상의 모든 것을 다 끊어 버리고 가야 되느냐?
Then, why do we have to cut off from everything in the secular world?

어머니 아버지의 사랑에 이끌리면 곧게 갈 수 없기 때문입니다.
It is because we cannot go straight if we are pulled by our love for our physical parents.

하나님은 지금까지 곧은 길을 찾아 오셨기 때문에 곧게 가야 된다는 겁니다. Since God has been going straight towards us, we also have to go straight. (7-57, 1978.3.19)

하나님이 그렇게 외로운 분이고,
Because I knew that God was such a lonely

하나님이 그렇게 고독한 분이시기에 내가 죽는 날까지 그의 뜻과 그의 소원을
하나라도 풀어 주고,
and isolated being, I have gone forth knowing that my mission until the day I die was to fulfill even a portion of God’s will and desire;

그 분야의 한 터전이라도 확대시켜 하나님을 위할 수 있는 사람을 모으는 것이 사명인 줄 알고 나온 것입니다.
to expand a foundation in at least one field and gather together those who can live for the sake of God.

욕을 먹어도, 매를 맞아도 복수할 줄 모르고 사랑으로 참아나온 것은 하나님의 자식으로 태어났기 때문이고, 그분의 뜻을 세워야 할 책임이 있기 때문입니다.
It is because I was born as God’s son and because I felt myself responsible for establishing His will that I have persevered until now with love. Even though I was persecuted, and even though I was beaten, I endured all this without taking revenge.

그러니 이 전통을 어떻게 세우느냐를 생각하면서 비틀걸음으로 혹은 허리를 꾸부리고 배밀이를 해 가면서 이것만은 남겨야 된다고 하며 싸워 나온 것입니다.
Even as I fought my way forward, staggering or crawling on my belly,
I always thought about how to set up this tradition and bequeath it to the world. (82-47, 1975.12.30

인간은 자기가 섰다고 자랑해서는 안 됩니다.
People should not be proud that they stand out.

자기가 세워 놓아 봤자 넘어진다 이겁니다.
If you raised yourself to such a position, you would fall down.

그렇지만 인간이 세워 주지 않더라도 하늘이 세워주면 반드시 된다는 겁니다.
However, even if people do not raise you to that position, if Heaven has raised you up, you will surely succeed. (155-42, 1965.10.31)

참부모가 하는 것이 무엇이냐?
What do the True Parents do?

모든 것을 승리해 가지고 하나님의 마음 깊은 데까지 찾아 들어가서 한을 해원하고, 그 승리권을 지상에 이루는 겁니다.
By winning every battle, they enter the deepest place in God’s heart to liberate His bitter pain and establish that realm of victory on the earth.

그러한 참부모가 출현했다는 것을 여러분은 감사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You should all be grateful that such True Parents have appeared.
(235-21, 1992.8.24)

여러분은 뜻길을 걸어 나오면서 얼마나 심각해 봤어요?
How seriously have you been following the way of God’s will?

선생님은 일생 동안 그런 길을 걸어온 것입니다. 처자도 모릅니다.
I have been following this path all throughout my life. Even my wife and children do not know this.

하나님만이 알아요.
Only God knew my situation.

고독단신 외로운 사나이가 가는 길을 그 누구도 모르는 가운데
It was a lonely path, which this solitary man had to follow, unknown by anyone.

하나님이 협조해서 놀랄만한 실적을 가지고 오늘날 이 사회에 문제를 제시했고,
I accomplished such amazing achievements, thanks to God’s help, and

또 피폐해 가는 이 민주세계의 사상권 내에 새로운 파급을 제시하는 문제의 인물이 되었습니다.
with this I have brought fundamental issues to society today. I have become a controversial person who presented a new wave of thought in this declining democratic world.

이렇게 된 것도 내가 잘나서가 아니라 하나님이 같이해 주셨기 때문입니다.
I have become like this not because I did so well but because God was with me. (82-45, 1975.12.30)